
꿈의 유효기간
살다 보면 어느 날 문득, 계산이 시작된다.
오늘까지 내가 살아온 날이 앞으로 내가 살아갈 날과 얼추 비슷해지는 시점. 그 순간은 생각보다 조용히 그리고 빠르게 찾아온다. 드라마처럼 극적이지도, 철학책처럼 무겁지도 않다.
그냥 어느 아침, 거울을 보다가, 혹은 출근길 지하철 창문에 비친 내 얼굴을 보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나는 지금 무엇을 향해 달리고 있는가.
어쩌다 보니 벌써 마흔 후반이다. 젊다고 하기엔 주름이 늘었고, 늙었다고 하기엔 아직 하고 싶은 게 많다. 이 어정쩡한 나이에 내가 요즘 자주 꺼내 드는 단어가 둘 있다. 사명(使命)과 천명(天命). 옛날 사람들이나 쓸 것 같은, 어딘지 거창하고 낯간지러운 단어들. 그런데 묘하게도, 나이가 들수록 이 말들이 더 가깝게 느껴진다.
꿈에는 유효기간이 있다는 걸 안 것도 이즈음부터다.
젊을 때 우리는 꿈을 꾼다. 성공하고 싶다, 인정받고 싶다, 잘 되고 싶다. 이것이 나쁜 꿈이냐고? 아니다, 전혀 그렇지 않다. 이런 꿈이 없었다면 나는 지금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것이다. 새벽같이 일어나 서류를 준비하고, 밤을 새워 제안서를 다듬고, 무시당하면서도 다시 문을 두드릴 수 있었던 건 바로 그 꿈 덕분이었다. 출세하고 싶다는 욕망, 성공하고 싶다는 욕심. 이것들은 부끄러운 감정이 아니라 인간이 앞으로 나아가는 데 필요한 연료 같은 것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나는 그 꿈에 한계를 느끼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그 꿈이 끝나는 지점이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아무리 높은 자리에 오른다 해도, 아무리 큰 성과를 낸다 해도, 내가 세상을 떠나는 순간 그 꿈은 나와 함께 끝난다. 내 이름을 새긴 명패는 치워지고, 내가 만든 성과는 숫자로 기록되어 어딘가 보고서 한 귀퉁이에 남을 것이다. 그게 전부다. 꿈의 유효기간이 딱 내 수명만큼이라면, 어느 시점부터는 그 꿈이 너무 작게 느껴지기 시작하는 게 당연한 일이 아닐까.
그래서 나는 요즘 다른 질문을 품고 산다.
나는 왜 태어났을까.
유치한 질문처럼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질문을 진지하게 붙잡고 있으면, 뜻밖에 단단한 것들이 손에 잡힌다. 동양의 옛 사람들은 이것을 천명이라고 불렀다. 하늘이 나에게 부여한 사명. 거창하게 들리지만, 사실 그 뜻은 간단하다. 내가 이 세상에 잠시 머무는 동안, 내 존재가 나 하나로 끝나지 않고 누군가에게, 무언가에게, 작은 보탬이 되어야 한다는 것.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황제였지만 늘 이렇게 생각했다고 한다. 나는 전체의 일부이며, 전체를 위해 존재한다고. 로마 황제가 매일 아침 그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다면, 우리라고 못 할 이유가 있을까.
나는 후배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작은 꿈을 버리라는 게 아니다. 그 꿈은 소중하고, 필요하고, 여전히 살아 있어야 한다. 다만, 거기에 하나를 더 얹어보는 것이다. 내가 잘 되는 꿈 위에, 내가 잘 됨으로써 누군가의 삶이 조금이라도 나아지는 꿈을 얹어보는 것이다. 꿈이 명사가 아닌 동사가 되는 순간이다.
그게 거창할 필요는 없다. 인류를 구하겠다는 비전이 아니어도 된다. 내 팀원 한 명이 나를 통해 성장할 수 있다면, 내 아이가 아버지를 보면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하나라도 배울 수 있다면, 내가 쓴 글 한 줄이 낯선 누군가에게 위로가 된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것이 이미 천명의 조각이다.
큰 꿈은 이런 식으로 태어난다. 거창한 선언이 아니라, 일상의 태도에서. 나를 넘어선 무언가를 향해 조금씩, 꾸준히, 그냥 그렇게 살아가는 것. 그 꿈은 내가 눈을 감은 뒤에도 사라지지 않는다. 그 꿈에 공감한 누군가가 이어받아 계속 살아가게 되기 때문이다.
사명이 뭔지 아직 모르겠다는 사람에게도 한마디 하고 싶다.
몰라도 괜찮다. 나 역시 아직 찾는 중이니까. 다만 사명은 어느 날 갑자기 계시처럼 내려오는 게 아니라는 이것 하나는 안다. 그것은 매일 작은 선택들 속에서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오늘 내 앞에 있는 사람에게 조금 더 성실하게 대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조금 더 정직하게 임하고, 나보다 조금 더 어려운 자리에 있는 사람을 외면하지 않는 것. 그 작은 선택들이 쌓이다 보면, 어느 날 뒤를 돌아봤을 때 그것이 길이 되어 있다.
인생의 절반을 지나온 사람이, 남은 절반을 어떻게 살까 고민하는 건 결코 나약함이 아니다. 오히려 그 질문을 진지하게 붙드는 사람만이 두 번째 절반을 제대로 살 수 있다. 살아온 날이 살아갈 날과 비슷해지는 그 지점이야말로, 진짜 꿈을 꾸기 가장 좋은 시절이다.
작은 꿈은 나를 여기까지 데려다줬다. 이제 큰 꿈이 나를 어딘가로 데려갈 차례다.
그 어딘가가 어디인지는, 아직 모른다. 하지만 방향만큼은 조금씩 보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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