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꿈은 좋은 어른입니다
— 명함 대신 태도로 살아가는 연습에 대하여 —
꿈이 명사이던 시절
어린 시절, 꿈은 언제나 당당한 명사였습니다.
대통령, 선생님, 경찰관, 운동선수. 그 단어들은 구체적이고, 선명했으며, 부모님 앞에서 발표하기에도 손색이 없었습니다. 어른들은 고개를 끄덕였고, 우리는 그 끄덕임이 곧 인생의 나침반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인생의 절반쯤을 지나온 지금, 조용히 돌아보면 묘한 의문이 하나 생겨납니다.
꿈이란 것이, 정말 명사여야 했을까요?
저는 지금껏 꽤 많은 직함을 가져보았습니다. CEO,CSO, CBO, CLO, COO. 명함은 두툼했고, 자리는 그럴듯했습니다. 회의실에 들어서면 사람들이 자리를 내어주었고, 보고서에는 늘 제 직함이 선명하게 찍혔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직함이 높아질수록 한 가지 질문이 더 크게 들려왔습니다.
'그래서, 당신은 어떤 사람입니까?'
직함은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를 말해줍니다. 하지만 내가 어떻게 살아가는지는, 끝내 말해주지 않습니다. 명사는 위치를 가리킬 뿐, 방향은 가리키지 못합니다.
꿈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여야 한다는 생각이 싹튼 것이 그때부터였습니다.
좋은 어른을 찾아서
세상에 어른은 참 많습니다. 아니, 너무 많습니다.
나이를 먹으면 자동으로 어른이 됩니다. 주민등록상으로는, 세금 고지서상으로는, 그리고 이마의 주름 개수로는 분명히. 그러나 진짜 어른다운 어른을 만나는 일은, 살아오면서 생각보다 훨씬 드문 경험이었습니다.
한때 존경하던 어른이 작은 이익 앞에서 흔들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자리가 사라지자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버리는 것도 보았습니다. 강한 자 앞에서 굽히고, 약한 자 앞에서 군림하는 모습도 보았습니다. 물론 그들을 탓하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어쩌면 저도 누군가의 눈에 그렇게 보였을 테니까요.
저 역시 이미 어떤 이들에게는 어른의 자리에 서 있습니다. 직장에서도, 가정에서도, 학교 운영위원회에서도 저는 어른이라는 이름으로 불립니다. 그런데 솔직히 고백하자면, 저는 아직 한참 모자랍니다.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고 목소리를 높인 날이 있었습니다. 옳은 것을 알면서도 불편함이 두려워 눈을 돌린 순간도 있었습니다. 잘못을 인정하는 것보다 합리화가 먼저 튀어나왔던 기억도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더 절실하게 원하게 되었습니다. 정말 좋은 어른이 되고 싶다.
덕장(德將)의 길을 택한 이유
철학자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로마 황제의 자리에 앉아서도 밤마다 스스로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오늘 나는 더 나은 사람이 되었는가.' 스토아 철학이 말하는 어른다움의 핵심은 결국 단순합니다. 외부의 소란이 아니라 내면의 질서를 지키는 것.
다산 정약용은 18년의 유배 생활 동안 500권이 넘는 책을 썼습니다. 억울하지 않았을 리 없습니다. 분하지 않았을 리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처한 상황을 한탄하는 대신, 그 상황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물었습니다. 그것이 어른의 태도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저는 오랜 직장 생활 동안 스스로에게 물어왔습니다. 용장(勇將)처럼 앞장서는 것이 나다운 것인지, 지장(智將)처럼 꾀를 내는 것이 옳은 것인지. 그러다 결국 선택한 것은 덕장(德將)의 길이었습니다. 화려한 용기도, 완벽한 전략도 아닌, 사람을 남기는 방식으로 일하는 것.
할 수 있는 것을 하자. 잘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자. 그러다 보면 언젠가 좋은 어른에 조금은 가까워질 것이다.
매일 아침, 그렇게 다짐했습니다. 다짐이 습관이 되고, 습관이 태도가 되기를 바라며.
그리고, 그 이름으로 불리는 날
좋은 어른이란 무엇일까요. 저는 거창한 정의를 내릴 자신이 없습니다. 그저 이런 사람이면 어떨까, 하고 가만히 상상해봅니다.
자기보다 약한 사람 앞에서 더 조심하는 사람. 자리가 없어도 태도가 변하지 않는 사람. 말과 행동이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사람. 그리고 가끔은, 틀렸다고, 미안하다고 말할 줄 아는 사람.
생각해보면 그리 대단한 기준도 아닙니다. 그런데 막상 매일 살아보면, 이 간단한 기준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새삼 깨닫게 됩니다. 어른다움이란, 도착하는 것이 아니라 향하는 것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저는 아직 그 기준에 한참 못 미칩니다. 그러나 그 방향을 향해 오늘도 걷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오늘은 충분합니다.
언젠가 누군가가 제 뒤를 돌아보며 이렇게 말해준다면 어떨까요.
'그 사람은 정말 어른다웠어.'
그 말 한마디를 들을 수 있다면, 저는 그것으로 사명을 다한 것이라 생각하게 될 것 같습니다. 명함 없이도, 직함 없이도, 그 한 문장만으로 충분한 인생이라고.
글을 마치며 한 가지 여쭙고 싶습니다.
혹시 여러분은 지금, 어떤 어른이십니까?
이 질문이 조금 불편하게 느껴지신다면, 어쩌면 그것은 아직 좋은 어른이 되는 꿈을 포기하지 않으셨다는 뜻일지도 모릅니다. 꿈이 불편할 때, 우리는 비로소 자라고 있는 것이니까요.
오늘도 어른을 향해 한 걸음씩, 함께 걸어가시길 바랍니다.
필자 소개
20년 이상 기업 경영 현장에서 CSO, COO 등의 역할을 맡아온 실무 경영인이자, '매일 5분 쓰고 5분 달리기'를 실천하는 에세이스트. 스토아 철학과 동양 고전에서 오늘의 언어를 길어 올리며, 중년의 삶을 솔직하고 유쾌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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