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제목: 축적과 발산
- 부제: 일과 인생에서 차이를 만드는 방법
- 저자: 신수정
- 출판: 웅진지식하우스
- 출간: 2026년 5월
당연한 것을 당연히 하지 못하는 우리에게
— 신수정 『축적과 발산』을 읽고
10여 년 전의 일이다. 당시 내가 몸담고 있던 회사에 투자를 해주셨던 회장님이 계셨다. 투자사이자 큰 회사를 이끄이시면서도 2주에 한 번 꼴로 직접 회사를 찾아오셨다. 경영 강의 겸 인생 강의였다. 그분이 오시는 날이면 우리는 회의실 의자를 가지런히 당겨 앉아 메모를 했다. 강연이 끝나고 나면 항상 같은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어떻게 저렇게 쉽고 당연한 말씀을, 저렇게 당연하게 잘하실까.'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그 당연한 이야기들이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고 살아왔다는 사실을 강연이 끝날 때마다 새삼 깨달았다. 당연한 말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내 삶에는 하나도 적용되지 않고 있었다. 이 책 '축적과 발산'을 읽으며 나는 그 회장님의 얼굴을 오랜만에 떠올렸다.
쌓기만 하는 사람들
책은 하나의 질문으로 시작한다. 왜 겸손하고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 기대만큼 풀리지 않는가. 저자는 전 KT 부사장을 지낸 경영인이자 10만 부 베스트셀러 '일의 격'의 작가다. 링크드인과 페이스북에서 10만 명이 넘는 팔로워를 거느린 '인터넷의 현인'으로 불리기도 한다. 그런 그가 수십 년간 수많은 직장인들을 만나며 가장 자주 들었던 하소연이 바로 이것이었다고 한다. 나는 열심히 하는데, 왜 기회는 오지 않는 걸까.
그의 대답은 의외로 단순하다. 쌓기만 했기 때문이다.
성실한 사람들은 쌓는 데는 능하다. 자격증을 하나 더 따고, 책을 한 권 더 읽고, 강의를 하나 더 듣는다. 그 누가 봐도 흠잡을 것 없는 성실함이다. 그런데 그렇게 쌓은 것을 꺼내놓는 일, 즉 '발산'에는 서툴다. 쌓는 일이 겸손처럼 느껴지고, 내보이는 일이 자랑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러니 충분히 준비되면 언젠가 누군가 알아봐 주리라 믿으며 조용히 기다린다.
하지만 저자는 단호하게 말한다. 드러내지 않는데 먼저 알아줄 사람은 없다고. 이것이 이 책이 '축적 후 발산'이 아니라 '축적과 발산'인 이유다.
당연한 것이 왜 이리 어려운가
솔직히 말하면, 처음에는 '그거야 당연한 소리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력도 쌓고 드러내기도 해야 한다는 것,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런데 책장을 넘기다 보니 슬그머니 불편함이 밀려왔다. 나는 지금 무엇을 쌓고 있는가. 그리고 그것을 세상 밖으로 얼마나 꺼내놓고 있는가.
저자가 들려주는 사례들이 머릿속에 박혔다. 자격시험 공부법 하나를 인터넷에 올렸다가 대학 강의 제안을 받고, 결국 겸임교수 자리까지 이어진 이야기. 좋아하는 여행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리기 시작해 직장 월급의 몇 배를 버게 된 젊은 인플루언서의 이야기. 그들이 특별히 뛰어난 실력을 갖추었기 때문이 아니었다. 일단 내보내고 피드백을 받으며 고쳐나가는 과정을 반복한 것이 전부였다.
거기서 나는 멈췄다. 나는 몇 번이나 '조금 더 준비되면'이라는 말로 발산을 미루었는가. 20년이 넘는 커리어 동안, 나는 쌓기는 했는데 얼마나 꺼내놓았는가. 그 회장님이 2주마다 찾아와 강의하셨던 이유가 이제야 조금 이해가 된다. 당연한 말이라서 하신 게 아니라, 당연한 것을 당연히 못하고 사는 우리를 위해 하신 것이었다.
반걸음만 앞서도 충분하다
책의 말미에 저자가 이제 막 커리어를 시작한 조카에게 건넨 말이 오래 남았다.
"고등학생 과외를 누가 하니? 교수들이 하지는 않잖아. 고작 1~2년 앞선 대학생들이 하지. 다른 사람보다 반걸음만 앞서 있어도, 나눌 수 있는 것은 충분히 있다."
이 말이 묘하게 위안이 됐다. 완성되지 않아도 된다는 것. 완벽하게 준비되지 않아도 된다는 것. 반걸음 앞선 지금의 나로도 충분히 무언가를 내놓을 수 있다는 것. 실력이 있어도 발견되지 않으면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저자의 말은 이 맥락에서 더 날카롭게 들린다.
쌓고 내보내고, 피드백을 받아 다시 쌓고, 또 내보내는 순환. 그 단순한 반복이 어느 순간 몰라보게 달라진 나를 만든다는 것. 인도 오지의 우체국 직원이었던 수학 천재 라마누잔이 영국의 수학자 하디에게 편지 한 통을 보낸 것처럼, 발산은 생각보다 작은 행동에서 시작된다.
일침이라는 선물
이 책은 자기계발서의 문법을 따르지만, 읽는 내내 일침처럼 들렸다. 저자의 말이 새로워서가 아니다. 오히려 너무 당연해서 더 아팠다. 우리는 당연한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당연하게 살지 못한다. 그 간극을 이 책은 담담하게 짚는다.
저자는 화려한 수사로 독자를 설득하려 하지 않는다. 그저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직접 겪고 부딪히며 얻은 것들을 내놓는다. 그 담담함이 오히려 더 무겁게 다가온다. 이미 충분히 성실했고 충분히 성장해왔으니, 이제는 자신의 역량을 세상에 더 당당히 내놓을 차례라는 저자의 말은 격려이기도 하고 책임의 요구이기도 하다.
2주에 한 번 찾아오셨던 그 회장님도 아마 같은 마음이셨을 것이다. 당신이 평생 쌓아온 것을 작은 강연 한 편으로 내보내며, 그것이 젊은 우리에게 작은 씨앗이 되기를 바라셨을 것이다. 그것이 발산이다. 그리고 그 씨앗이 10년이 지나 이렇게 싹을 틔우는 것도, 발산의 힘이다.
오늘, 아주 작은 첫 발산이 있기를 바란다. 저자가 독자에게 건네는 이 마지막 말을, 나는 오늘의 나 자신에게도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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