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제목: 두 노인 , 100년, 뿌리 깊은 고전문학 시리즈 17
- 저자: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 출판: 뿌리깊은문학
- 출간: 2017년 12월
순례의 길을 잃은 자가 오히려 신에게 가까웠다
— 톨스토이 《두 노인》을 읽고
책을 덮고 한참 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다. 쪽수로는 얼마 안 되는 단편이었지만, 마음속에 내려앉은 무게는 두꺼운 철학서 못지않았다. 아니, 어쩌면 더 묵직했다. 철학서는 논리로 독자를 설득하지만, 이 이야기는 가슴 어딘가 방치해두었던 자리를 그냥 조용히 찔러 온다.
톨스토이는 "두 노인'에서 두 인물을 대비시킨다. 술과 담배를 멀리하지 못하고 약속도 종종 어기는 허술한 예리세이, 그리고 경건하고 단정하며 흠잡을 데 없는 에핌. 세상의 눈으로 보면 예핌이 훨씬 나은 사람이다. 그런데 결말에 이르러 톨스토이는 부드럽게, 그러나 단호하게 묻는다. 과연 그런가?
스스로에게 질문하며 좀 오래 머물렀다.
예리세이는 성지 순례 길 위에서 굶어 죽어가는 낯선 가족을 마주한다. 그리고 모든것을 주며 결국 순례를 포기하고 그 자리에 머문다. 예필은 목적지를 향해 꾸준히 걸어간다. 규율을 지키고, 기도를 올리고, 성지에 도착해 소원을 빈다. 그런데 두 노인이 나중에 다시 만났을 때, 예리세이는 이미 그곳에서 기도를 마치고 돌아오고 있었다. 어떻게? 톨스토이는 신은 성지에 있지 않고 금 내 앞에 쓰러져 있는 사람 안에 있다고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공자는 인(仁)을 묻는 제자에게 이렇게 답했다. "애인(愛人)." 사람을 사랑하는 것. 그것이 인이다. 거창한 형이상학도, 엄격한 자기 수양의 완성도 아니다.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을 향한 따뜻한 시선, 그것이 출발이다. 예리세이의 행동은 바로 그 애인을 몸으로 실천한 것이었다.
에픽테토스의 말처럼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우리의 판단과 의지뿐이다. 예리세이는 어떤 외부의 기준도 따르지 않았다. 성지 순례라는 종교적 목적도, 타인의 시선도, 심지어 자신의 체면도 잠시 내려놓았다. 그가 통제한 것은 단 하나, 바로 지금 이 순간 내 앞의 사람에게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라는 내면의 선택이었다.
읽는 내내 나는 예핌을 지향하고 살었다는걸 알았다. 계획을 세운다. 목표를 정한다. 원칙을 지키려 한다. 담배는 물론이고, 매일 루틴도 있다. 어쩌면 나는 꽤 단정한 사람이라고 스스로 생각해왔는지 모른다.
그런데 나는 언제 마지막으로 내 앞에 쓰러져 있는 누군가를 위해 내 순례를 멈췄던가.
가족을 위해, 팀원을 위해, 오래된 친구를 위해. 목적지를 포기하고 그 자리에 남은 적이 있었는가. 아니면 나는 늘 규칙과 일정과 효율의 이름으로 그 순간을 지나쳐버렸는가.
한때 덕장(德將)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한 적이 있다. 지략의 장수, 용기의 장수와 달리 덕의 장수는 사람을 먼저 본다. 전략보다 사람이 앞에 있다. 예리세이가 바로 그런 존재였다. 그는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멈췄다. 그리고 그 멈춤이 기적이 되었다. 과연 나는 얼마나 자주 멈추 었을까?
책은 종교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사실 보편적인 인간의 이야기다. 신앙을 가졌든 아니든 상관없다. 톨스토이가 묻는 것은 결국 당신은 지금 어디를 향해 걷고 있는가이다. 그 길 위에서 쓰러진 사람을 보았을 때, 당신은 무엇을 선택하는가. 살면서 우리는 수없이 많은 성지를 향해 달려간다. 승진, 성공, 안정, 명예. 그 목적지들 중 어느 하나도 나쁜 것은 없다. 하지만 때로는 예리세이처럼 그 길 위에서 멈추는 것이 오히려 더 멀리 나아가는 것일 수 있다.
책을 다시 펼쳐 첫 페이지부터 읽어 내려갔다. 짧은 이야기인데도 두 번째 읽을 때는 또 다른 것이 보였다. 예리세이가 가족을 돕는 장면에서 그는 아무런 고민도 하지 않는다. 망설임이 없다. 그냥 한다.
어쩌면 선한 행동이란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생각하기 전에 몸이 먼저 움직이는 것. 그 자동성이 쌓여 인격이 되고, 인격이 쌓여 사람이 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덕(德)을 습관이라 했을 때, 그 말은 이렇게 읽혀야 했다. 덕은 주저함 없이 움직이는 몸이다.
오늘 한 가지를 다짐했다.
목적지보다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겠다. 내 앞에 있는 사람을 먼저 보겠다. 그것이 내가 이 짧고도 깊은 이야기에서 받은 가장 긴 여운이다.
2026년 5월
쓰고 달리고 생각하는 중년의 독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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