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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언 & 생각

노래는 먼저 나보다 어른이 되어 있었다 feat 나가부츠 츠요시

by SSODANIST 2026. 5.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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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는 나보다 먼저 어른이 되어 있었다
 
오랜만에 우연히 나가부치 츠요시 노래를 들었다. 거칠게 갈라지는 그 목소리가 이어폰을 채우자, 거짓말처럼 시간이 접혔다. 마흔여덟의 현실은 사라지고, 1990년대 후반의 어느 좁은 방이 그 자리에 펼쳐졌다. 그 시절 나는 고등학생이었다. 야간 자율학습이 끝나면 가방 안에는 늘 카세트테이프 몇 개와 워크맨이 들어 있었다. 좋아하는 소절을 찾으려고 테이프를 앞뒤로 돌리다 보면 그 부분만 늘어나 소리가 흐물거리곤 했는데, 나는 그 흐물거리는 한 소절을 그렇게나 아꼈다.


그때 나는 그의 노래 가사를 다 알아듣지 못했다. 일본어에 능했던 것도 아니고, 설령 뜻을 옮겨 적어 본들 그 안에 담긴 무게까지 가늠할 나이는 아니었다.  낯선 도시에서 한 남자가 버텨 내는 이야기, 사랑하는 이의 앞날을 위해 잔을 드는 이야기 톰보, 간빠이, RUN 같은 노래는 어른의 피로와 어른의 결심을 부르고 있었지만, 열일곱 여덥의 나는 그저 멜로디가 좋아서, 그 목소리가 쓸쓸하면서도 멋져서들었을 뿐이다.


말하자면 그 노래는 나보다 먼저 어른이 되어 있었다. 나는 그 앞에서 발끝을 들고 선 아이였다. 노래가 들려주는 삶을 아직 한 번도 살아 보지 못한 채, 멜로디라는 손잡이만 붙들고 있었다. 그런데 오십을 코앞에 둔 지금, 같은 노래를 다시 들으니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그토록 멀게만 느껴지던 가사가 이제는 내 이야기처럼 들리는 것이다. 버틴다는 말의 속내를 안다. 누군가를 위해 잔을 든다는 것이 얼마나 떨리고도 벅찬 일인지 안다. 노래는 한 음도 변하지 않았는데, 듣는 내가 달라진 덕분에 비로소 그 가사가 내게 도착했다.


문득 궁금해진다.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무엇이 다르고 또 무엇이 같을까.
다른 것부터 꼽자면 한참이다. 그 시절 내 앞에 놓인 시간은 온통 가능성이었다. 무엇이든 될 수 있을 것 같았고, 밤을 새워도 몸은 다음 날 멀쩡했다. 꿈은 아직 가위를 대지 않은 옷감처럼 넉넉했다.
지금의 나는 다르다. 어깨에는 식구의 무게가 얹혀 있고, 나는 그 무게를 큰 불평 없이 지는 법을 어느새 배웠다.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되었고, 가장이라는 이름의 책임을 매일 아침 함께 출근시킨다. 꿈은 몇 번이고 줄여서 다시 재단했다. 몸은 무리한 다음 날을 정직하게 청구해 온다. 잃어버린 것들의 목록도 그만큼 길어졌다. 그때의 나는 상실을 몰랐지만, 지금의 나는 안다.


그러나 가만히 들여다보면, 변하지 않은 것도 분명히 있다. 워크맨의 재생 버튼을 누르던 그 아이가 지금도 내 안에 그대로 살고 있다. 좋은 노래 한 소절에 마음이 출렁이는 것. 내일은 오늘보다 조금 나으리라 믿으며 작은 습관 하나를 붙드는 것. 쓸쓸함을 끝까지 외면하지 않으면서도 끝내 주저앉지는 않는 것. 그 핵심은 삼십 년이 흘러도 닳지 않았다.


공자는 냇가에 서서 말했다. “가는 것이 이와 같구나. 밤낮으로 그치지 않는구나.” 흐르는 강물은 한순간도 같은 물이 아니다. 어제의 물은 이미 저만치 흘러갔고, 지금 발을 적시는 물은 처음 보는 물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 강을 여전히 같은 이름으로 부른다.


사람도 그렇지 않을까. 내 몸의 세포는 그 시절과 거의 다 바뀌었고, 믿음과 취향도 여러 번 갈아입었다. 그러나 강이 강인 것처럼, 나는 여전히 나다. 끊임없이 변하면서도 끊기지 않고 이어지는 것  어쩌면 그것이 한 사람의 일생인지도 모른다.


노래의 힘은 바로 여기에 있다. 노래는 강물 위에 단단히 박힌 말뚝 같다. 세상도 나도 쉬지 않고 흘러가는데, 그 한 곡만은 그 자리에 가만히 남아 준다. 그래서 우리는 오랜만에 그 노래를 틀 때마다 내가 얼마나 멀리 흘러왔는지를 가늠할 수 있고, 동시에 처음 출발했던 강기슭으로 잠시 돌아가 볼 수도 있다. 노래는 과거를 박제하지 않는다. 다만 언제든 돌아와 앉을 자리 하나를 비워 둘 뿐이다.


그러니 오늘 밤 이 노래 앞에는 두 사람이 앉아 있는 셈이다. 테이프가 늘어지도록 같은 소절을 돌리던 열일곱의 소년과, 그 소년이 한 번도 상상해 본 적 없는 마흔아홉의 사내. 우리는 나란히 앉아 같은 목소리를 듣는다.
신기하게도 나는 그 소년에게 그리 미안하지 않다. 네가 꿈꾸던 어른이 되었느냐고 묻는다면 선뜻 그렇다고 답하긴 어렵겠지만, 그래도 너의 노래만은 잃어버리지 않았다고, 너는 여전히 내 안에서 재생 버튼을 누르고 있다고 말해 줄 수는 있다.


곡이 끝났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선다. 강물은 여전히 흐르고, 나도 다시 그 흐름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어제보다 조금 느려진 걸음으로, 그러나 멈추지 않고. 그거면 충분하다. 그 시절의 노래가, 지금의 나에게 그렇게 나직이 일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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