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같이 버텼는데, 왜 누구는 피어나고 누구는 시들까?
열심히 하는데 이상하게 안 풀린다면, 문제는 당신의 의지가 아니라 '서 있는 자리'일지도 모른다. 『그릿』으로 "재능보다 끈기"를 말했던 앤젤라 더크워스가 이번엔 이렇게 말한다.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기 전에, 상황부터 더 낫게 만들라."
그래서 나도 결심했다. 더 버티기 전에, 자리부터 바꾸기로.

바쁜 분들을 위한 3줄 요약
- 그릿은 필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때가 있다.
- 공간, 동료, 멘토, 문화. 이 네 가지가 우리를 생각보다 훨씬 크게 좌우한다.
- 의지력으로 유혹을 이기려 애쓰지 말고, 유혹이 닿지 않는 곳에 서라.
1. "노력하면 된다"를 믿던 사람의 의문
운 좋게 비즈니스북스의 지원으로 『그릿』의 저자 앤젤라 더크워스의 신작 『시추에이티드(Situated)』 가제본을 먼저 읽었다.
예전에 『그릿』을 몇 번이고 읽으며 밑줄을 참 많이 그었다. 재능보다 열정과 끈기라는 말이 좋았다. 영업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에게 "노력하면 된다"는 말은 거의 신앙 같은 것이었으니까.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슬그머니 의문이 생겼다. 똑같이 버텼는데 왜 어떤 사람은 피어나고 어떤 사람은 시들었을까.
혹시 나는 버틴 게 아니라,
버틸 수 있는 자리에 운 좋게 서 있었던 건 아닐까.
2. 『시추에이티드』가 던지는 단 한 줄의 메시지
책을 펼치자 그 의문에 대한 답이 먼저 나왔다. 그릿은 필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때가 있다. 미국에서 나오자마자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그릿만큼 세게 맞았다"는 평이 잇따랐다는데, 읽어보니 과장이 아니었다.
저자는 우리를 좌우하는 네 가지 '상황'을 짚는다.
- 공간: 손 닿는 곳에 무엇이 있는가
- 동료: 곁에 누가 있는가
- 멘토: 누가 나를 이끌어주는가
- 문화: 어떤 조직과 공동체에 몸담고 있는가
핵심은 이것이다. 의지력으로 유혹을 이기려 애쓰지 말고 유혹이 닿지 않는 곳에 서라. 쉬운 길이 반칙처럼 느껴져도, 실은 그게 가장 현명한 해법일 수 있다.
테일러 스위프트, 마이클 펠프스 같은 이름도 나오지만 정작 마음을 붙든 건 저자 자신의 고백이었다. 번아웃과 결혼 생활의 위기 앞에서 자신을 바꾸려 애쓰는 대신, 상황을 바꾸며 길을 찾았다는 이야기.
『그릿』의 저자가 "나도 버티기만으로는 안 됐다"고 털어놓는 장면은
묘하게 위로가 됐다.
3. 2천 년 전 순자는 이미 알고 있었다
읽는 내내 순자가 떠올랐다. 「권학」편에 이런 구절이 있다.
"쑥이 삼밭에서 자라면 붙들어주지 않아도 곧게 자란다."
蓬生麻中 不扶而直 (봉생마중 불부이직)
제멋대로 구불거리는 쑥도 곧게 뻗는 삼 사이에 있으면 저절로 곧아진다는 뜻이다. 그래서 군자는 사는 곳을 가리고 사귀는 사람을 고른다고 했다. 맹자의 어머니가 세 번 이사한 것도 같은 이치였을 것이다.
더크워스가 수십 년의 연구로 증명한 것을, 2천 년도 더 전의 스승은 쑥과 삼으로 이미 말하고 있었던 셈이다.
4. 새 회사 대표로서 뜨끔했던 순간
뜨끔했다. 올여름 새 회사에 대표로 부임하면서 나는 무엇부터 바꿨던가. 사람들에게 조금만 더 버텨달라고, 더 노력해달라고만 하지 않았나. 정작 그들이 곧게 자랄 수 있는 삼밭을 만드는 일은 뒤로 미뤄둔 채.
리더의 일은 그릿을 요구하는 게 아니라,
그릿이 보상받는 상황을 설계하는 일이다.
5. 솔직히 아쉬운 점도 있다
사는 동네까지 바꾸라는 조언은 누구에게나 쉬운 선택지가 아니다. 상황을 고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특권일 수 있다는 물음에 책이 얼마나 정면으로 답하는지는 정식 번역본에서 더 꼼꼼히 확인하고 싶다.
해외 독자들 사이에서도 "그럭저럭 괜찮다"는 미지근한 평이 섞여 있는 걸 보면, 『그릿』만큼의 충격을 기대한다면 다소 익숙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유명인 사례로 끌고 가는 미국식 자기계발서의 문법도 그대로다.
책을 덮고 남긴 세 가지 (오늘 바로 해볼 것)
- 의지를 다지기 전에 책상 위부터 정리할 것.
- 내 곁의 사람들이 나를 어디로 데려가고 있는지 돌아볼 것.
- 우리 조직이 누군가에게 삼밭이 되어주고 있는지 물을 것.
버티는 힘은 여전히 소중하다. 다만 이제는 안다. 쑥이 곧게 자라는 비결은 쑥의 근성이 아니라, 어디에 뿌리내렸느냐에 있다는 것을.
한국어판이 나오면, 이번엔 아들 책상에도 한 권 올려둘 생각이다.
이런 분께 추천합니다
- 열심히 하는데 성과가 안 나서 지친 직장인
- 팀원에게 "조금만 더"를 말하고 있는 리더와 관리자
- 『그릿』을 감명 깊게 읽었던 독자
- 아이의 공부 환경과 친구 관계를 고민하는 부모
책 정보
- 제목: 시추에이티드
- 원제: Situated: Find the People and Places That Bring Out Your Best
- 부제: 의지, 노력, 끈기를 성공으로 연결하는 사람과 장소의 힘
- 저자: 앤젤라 더크워스 (『그릿』 저자)
- 옮긴이: 신솔잎
- 출판: 비즈니스북스 (예정)
- 출간: 2026년 11월
여러분을 곧게 자라게 해준 '삼밭'은 어디였나요? 사람이든, 장소든, 조직이든 댓글로 나눠주세요. 이 글이 와닿았다면 지금 버티느라 지친 누군가에게 공유해 주셔도 좋겠습니다.
※ 이 글은 비즈니스북스로부터 가제본을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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