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줄 요약: 『일리아스』는 전쟁의 기록이 아니라, 분노로 시작해 애도로 끝나는 '인간의 마음'에 관한 노래다.
이런 분께 추천: 고전을 한번 제대로 읽어 보고 싶은 분, 분노와 갈등이 일상이 된 시대에 사람을 이해하는 법을 고민하는 분
핵심 키워드: 아킬레우스의 분노, 헥토르와 안드로마케, 프리아모스와 아킬레우스의 밤, 명예와 인정 욕구
「일리아스」 책 정보
| 제목 | 일리아스 (ILIAS) |
| 저자 | 호메로스 |
| 삽화 | 페테르 파울 루벤스 외 (명화 103점 수록) |
| 옮긴이 | 박문재 |
| 출판 / 출간 | 현대지성 (현대지성 클래식 64) / 2025년 4월 |
일리아스 (국내 유일 명화 103점 수록 완역본) | 현대지성 클래식 64 | 호메로스
호메로스의 대서사시 『일리아스』는 현존하는 서양 문학 중 가장 오래된 서사시다. 저자 호메로스는 오랫동안 구전으로 전해 내려온 고대 그리스인의 신화와 전설을 최초로 기록했을 뿐 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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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리아스 서평: 분노의 노래가 끝내 들려주는 것
3천 년 전의 노래를 다시 펴는 이유
『일리아스』의 첫 단어는 '분노'다.
"노래하소서, 여신이여, 펠레우스의 아들 아킬레우스의 분노를."
서양 문학의 첫 작품이 사랑이나 영광이 아니라 한 사람의 화로 시작한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호메로스는 처음부터 이것이 무엇에 관한 이야기인지 숨기지 않았다.
많은 사람이 이 책을 트로이아 전쟁 이야기로 기억한다. 그러나 정작 작품에는 목마도, 트로이아의 함락도, 아킬레우스의 죽음도 나오지 않는다. 10년 전쟁 가운데 고작 50여 일, 그것도 한 사람의 마음이 뒤틀렸다가 겨우 풀리기까지의 시간만을 다룬다. 호메로스가 그리려 한 것은 전쟁의 역사가 아니라 전쟁 속 인간의 마음이었다.
그래서 이 오래된 노래는 지금도 낡지 않는다. 분노가 일상이 되고, 상대를 이겨야 할 적으로만 보는 일에 익숙해진 시대라면 더욱 그렇다.
일리아스 줄거리 한눈에 보기
본격적인 이야기에 앞서, 처음 읽는 분들을 위해 큰 흐름만 짚어 둔다. 『일리아스』는 모두 24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 발단: 그리스군 총사령관 아가멤논이 아킬레우스의 전리품인 여인 브리세이스를 빼앗고, 모욕당한 아킬레우스는 전투에서 물러난다.
- 전개: 최강의 전사가 빠지자 그리스군은 헥토르가 이끄는 트로이아군에게 밀려 함선 앞까지 쫓긴다.
- 위기: 아킬레우스의 벗 파트로클로스가 그의 갑옷을 입고 대신 출전했다가 헥토르의 손에 죽는다.
- 절정: 분노의 방향을 바꾼 아킬레우스가 전장에 돌아와 헥토르를 죽이고, 그 시신을 끌고 다니며 욕보인다.
- 결말: 트로이아의 늙은 왕 프리아모스가 밤중에 홀로 아킬레우스를 찾아가 아들의 시신을 돌려받고, 헥토르의 장례로 노래가 끝난다.
호메로스가 진정으로 하고 싶었던 말
① 영웅을 노래하며 영웅주의를 의심하다
겨우 한 여인을 두고 벌어진 명예 다툼이 수많은 동료의 죽음으로 번진다. 아킬레우스는 자신의 명예를 지키려고 물러섰고, 그 대가로 가장 아끼던 벗 파트로클로스를 잃었다. 호메로스는 이 과정을 영웅답게 꾸미지 않는다. 명예를 지키려는 분노가 어떻게 자기를 파멸시키는지를 그저 집요하게 보여 줄 뿐이다.
눈여겨볼 장면이 있다. 화해를 청하는 사절 앞에서 아킬레우스는 영웅의 삶 자체를 되묻는다. 싸우는 자나 버티는 자나 똑같은 몫을 받고, 용감한 자나 비겁한 자나 똑같이 죽는다고. 영웅 서사시의 한가운데에서 주인공이 영웅주의의 허망함을 말하는 것이다.
② 죽음은 이름 없는 자에게도 이름을 돌려준다
『일리아스』를 처음 읽으면 끝없이 이어지는 죽음의 목록에 지치기 쉽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호메로스는 쓰러지는 이름 없는 병사에게도 한두 줄의 삶을 남겨 준다. 어느 강가에서 태어났는지, 누구의 아들이었는지, 신혼의 아내를 두고 왔는지를 적어 둔다.
그리스 쪽이든 트로이아 쪽이든 가리지 않는다. 전쟁에서 죽은 사람은 숫자가 아니라 한 사람의 삶이었다는 것, 이것이 호메로스가 죽음을 다루는 방식이다. 유명한 구절도 그 안에서 나온다.
"인간의 세대는 나뭇잎과 같다."
③ 적에게도 집이 있고 아이가 있다
이 작품에서 가장 인간적인 인물은 헥토르다. 그리스인 호메로스가 적의 장수를 가장 따뜻하게 그렸다는 사실은 놀랍다. 헥토르는 출전 전 아내 안드로마케와 작별한다. 어린 아들이 투구의 말총 장식에 놀라 울자 그는 투구를 벗어 땅에 내려놓고 아이를 안는다.
호메로스는 독자에게 어느 편을 응원하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대신 양쪽 모두가 지키려는 것이 똑같이 가족과 고향이라는 사실을 보여 준다. 아킬레우스의 방패에 전쟁만이 아니라 결혼식과 추수, 춤추는 아이들이 새겨져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전쟁 한가운데서도 시인은 사람들이 실제로 지키고 싶었던 평범한 삶을 잊지 않는다.
④ 작품은 승리가 아니라 함께 우는 장면에서 절정에 이른다
만약 호메로스가 승리를 노래하려 했다면 작품은 헥토르가 쓰러지는 장면에서 끝났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한 권을 더 썼다. 늙은 프리아모스는 밤중에 홀로 적의 막사를 찾아간다. 그리고 아들을 죽인 사람의 손에 입을 맞춘다.
아킬레우스는 그 노인에게서 멀리 고향에 남겨두고 온 자기 아버지를 본다. 두 사람은 각자의 상실을 두고 함께 운다. 작품 내내 타오르던 분노가 비로소 가라앉는 순간이다.
호메로스가 끝내 하고 싶었던 말은 여기에 있다고 본다.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상대를 이기는 힘이 아니라, 상대의 슬픔을 알아보는 능력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서사시의 마지막 문장은 승자의 이름이 아니라 이것이다.
"이렇게 그들은 말을 길들이는 헥토르의 장례를 치렀다."
패자의 장례식으로 끝나는 전쟁 서사시, 그 하나만으로도 이 작품의 본심은 분명하다.
분노의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일리아스가 지금 읽혀야 하는 이유
분노는 항상 정당해 보인다
아킬레우스의 분노에는 이유가 있었다. 그는 실제로 부당한 대우를 받았고, 누구라도 화가 날 만한 상황이었다. 문제는 그 정당한 분노가 멈추지 않았다는 데 있다. 호메로스는 분노의 위험이 그 정당함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오늘 우리 주변도 다르지 않다. 화낼 이유는 넘치고, 화를 부추기는 스크린은 손바닥 위에 있다. 내 분노는 정의로 느껴지고 상대의 분노는 폭력으로 보인다. 일리아스는 묻는다. 그 분노가 어디서 멈출 것인가, 그리고 멈추지 못했을 때 누구를 잃게 될 것인가.
적을 사람으로 보는 능력
지금 우리 사회는 상대를 지우는 데 익숙하다. 정치, 세대, 성별, 지역을 가르는 선마다 상대는 하나의 딱지로 줄어든다. 그 딱지 뒤에 누군가의 아들이고 누군가의 부모인 한 사람이 있다는 사실은 쉽게 잊힌다.
호메로스는 3천 년 전에 이미 다른 길을 보여 주었다. 그는 적국의 장수를 악마로 그리지 않고, 아이를 안고 웃는 아버지로 그렸다. 상대를 설득하지 못하더라도 상대에게도 지키고 싶은 것이 있다는 것을 알아보는 일, 그것이 대화가 시작되는 자리다.
인정 욕구가 사람을 삼킬 때
아킬레우스와 아가멤논의 다툼은 결국 누가 더 인정받을 것인가의 문제였다. 두 사람 모두 체면을 잃지 않으려다 공동체 전체를 위험에 빠뜨렸다. '좋아요'와 팔로워, 직함과 연봉으로 서로를 재는 지금, 이 모습은 낯설지 않다.
호메로스는 인정받고 싶은 마음 자체를 비난하지 않는다. 다만 그것이 삶의 전부가 될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보여 준다. 우리가 끌어안아야 할 것은 명예가 아니라 곁에 있는 사람이라는 것, 아킬레우스는 그것을 너무 늦게 깨달았다.
함께 슬퍼하는 일
프리아모스와 아킬레우스는 서로를 용서한 것이 아니다. 전쟁은 계속되고, 두 사람 모두 곧 죽음을 맞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그 밤 한 자리에서 음식을 나누고 서로를 바라본다.
우리는 갈등을 끝내려면 먼저 누가 옳았는지부터 가려야 한다고 믿는다. 호메로스는 다른 순서를 제안한다. 함께 슬퍼할 수 있다면, 옳고 그름이 가려지지 않아도 사람은 한 자리에 앉을 수 있다는 것이다.
맺으며: 분노로 시작해 애도로 끝나는 노래
『일리아스』는 분노로 시작해 애도로 끝난다. 그 사이에서 한 인간이 자기 슬픔을 통해 남의 슬픔을 이해하게 된다. 호메로스가 우리에게 남긴 것은 전쟁의 기록이 아니라 바로 그 길이다.
분노를 다스리는 법을 배우는 일은 어렵다. 그러나 3천 년 전의 시인은 적어도 그 방향만은 분명하게 가리켜 두었다.
상대를 꺾은 순간이 아니라
상대의 손을 잡은 순간에
사람은 비로소 사람이 된다.
오늘 이 책을 다시 펼친다면, 마지막 권의 그 밤 장면을 천천히 읽어 보기를 권한다. 우리가 요즘 누구에게 화가 나 있는지, 그리고 그 사람의 집에는 누가 기다리고 있을지를 한 번쯤 떠올려 보면서.
함께 생각해 볼 질문
- 요즘 내가 '정당하다'고 믿으며 품고 있는 분노는 무엇인가?
-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에게 붙여 둔 '딱지' 뒤에는 어떤 사람이 있을까?
- 옳고 그름을 가리기 전에, 함께 슬퍼할 수 있었던 순간이 있었나?
『일리아스』에서 가장 오래 마음에 남은 장면이 있다면 댓글로 나눠 주세요. 저는 투구를 벗고 아이를 안는 헥토르, 그리고 프리아모스와 아킬레우스가 함께 울던 그 밤이었습니다.
함께 읽으면 좋은 책
- 『오디세이아』, 호메로스: 전쟁이 끝난 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일리아스』의 짝을 이루는 또 하나의 서사시
- 「일리아스, 또는 힘의 시」, 시몬 베유: 『일리아스』를 '힘이 사람을 사물로 만드는 이야기'로 읽어 낸 고전적인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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