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난 늘 조건을 따져도 결국 마음이 끌리는 쪽을 택다..
나는 늘 조건보다 마음이 끌리는 쪽을 택했던 것 같다.
무엇이 더 유리한지 따지는 일과 무엇을 원하는지 아는 일은 달랐다.
머리로 비교를 끝내도 마음에는 다른 답이 남아 있곤 했다.
조건은 설명하기 쉽다. 보수와 자리, 안정과 가능성처럼 눈에 보이는 것을 놓고 비교하면 된다.
마음이 끌리는 이유는 그렇게 또렷하지 않다.
남에게 설명하려고 하면 말이 부족해지고, 나 자신에게 물어도 한 번에 답이 나오지 않을 때가 있다.
그렇다고 설명하기 어려운 마음이 모두 가벼운 것은 아니다.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무엇까지는 감당할 수 있는지, 무엇만큼은 놓치고 싶지 않은지가 그 안에 담겨 있을 수도 있다. 조건표에는 적히지 않지만 선택하는 사람에게는 중요한 것들이다.
물론 마음을 따랐다는 말이 모든 선택을 옳게 만들어 주지는 않는다.
끌림은 때로 조급함과 닮아 있고, 불편한 현실을 피하고 싶은 마음도 그럴듯한 이유로 포장된다.
하고 싶다는 마음만으로 비용과 책임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내 선택의 무게를 다른 사람이 함께 져야 한다면 더 살펴야 한다.
그래서 조건을 살피는 일과 마음을 듣는 일을 서로 반대편에 놓을 필요는 없다.
마음이 방향을 가리킨다면 조건은 그 길을 어떻게 걸을지 묻게 한다.
내가 원하는 것인지, 잠깐 부러운 것인지, 어려워져도 감당할 수 있는지를 확인하는 일은 마음을 꺾는 일이 아니다.
결과가 좋았다고 그 선택의 이유까지 모두 옳았던 것은 아닐 것이다.
결과가 아쉬웠다고 당시의 마음까지 틀렸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
선택에는 늘 그때 알 수 있었던 것과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되는 것이 함께 있다.
결과만으로 그때의 나를 전부 평가하면 남는 것이 너무 적다.
돌아보면 늘 마음이 먼저였다는 내 말은, 선택이 모두 잘되었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내가 무엇에 움직이는 사람인지 돌아보게 한다.
앞으로도 마음이 끌린다면 그 이유를 조금 더 들여다보고 싶다.
끌림은 솔직하게 인정하되, 감당해야 할 몫도 빠뜨리지 않는 쪽으로.
조건은 계속 달라지고 마음도 변한다.
어느 하나가 언제나 정답일 수는 없다.
그래도 선택 앞에서 내 마음을 없는 셈 치고 싶지는 않다.
마음으로 고른 길이라도, 그 길을 걷는 책임까지 내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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