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제목: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 부제: 시대의 지성 이어령과 ‘인터스텔라’ 김지수의 ‘라스트 인터뷰’
- 저자: 김지수
- 출판: 이어령열림원
- 출간: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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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 김지수
시대의 지성 이어령과 ‘인터스텔라’ 김지수의 ‘라스트 인터뷰’. 삶과 죽음에 대한 마지막 인생 수업. “나는 곧 죽을 거라네. 그것도 오래지 않아. 그러니 지금 할 수 있는 모든 이야기를 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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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스승 삼아 배운 삶의 진실
—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을 읽고
매일 오분 쓰고, 오분 달리기 · SSODANIAT
봄의 매화가 지고 여름 신록이 우거질 즈음, 한 노인은 자신의 몸속을 헤집고 다니는 죽음과 매일 밤 팔씨름을 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화요일마다 제자를 불러 앉혀놓고 자신이 얻어낸 전리품들을 하나씩 꺼내 보였다. 그 전리품이란 다름 아닌, 평생을 지성의 칼날로 갈고닦아온 삶과 죽음에 관한 가장 솔직하고 아름다운 진실이었다.
이책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은 그렇게 탄생했다. 암 투병 중이던 이어령 선생이 저널리스트 김지수와 나눈 열여섯 번의 대화를 엮은 이 책은, 출간 당시부터 '한국판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하지만 나는 그 비교가 조금은 아쉽다. 모리 슈워츠 교수의 말이 얼어붙은 땅을 녹이는 온기처럼 스며든다면, 이어령 선생의 말은 죽비(竹篦)처럼 독자의 이마를 후려치는 데 더 가깝기 때문이다. 그것은 따뜻한 위로이기 이전에, 먼저 정신을 번쩍 들게 하는 충격이다.
이어령 선생은 2019년 가을, 인터뷰어 김지수에게 이렇게 말했다. '마이 라이프는 기프트였다.' 그 짧은 고백 하나에 7천여 개의 댓글이 달렸다. 사람들은 왜 그 말에 그토록 반응했을까. 아마도 그것이 공허한 위로의 수사가 아니라, 죽음을 실제로 마주한 사람의 육성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고통 속에서 비로소 도달한 감사. 죽음 앞에서야 온전히 보이게 된 삶의 아름다움. 우리는 누군가가 그 경지를 대신 살아주고 전해주기를 언제나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 책에서 선생이 가르치고자 한 가장 핵심적인 것은, 죽음이 삶의 바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삶의 한가운데 있다는 사실이다. 그는 여름 운동회 날 한창 떠들썩한 운동장 너머 텅 빈 교실의 정적을, 개구리 가득한 논두렁에 돌멩이 하나 던지자 일시에 찾아오는 침묵을 이야기한다. 그 순간들이 바로 삶 속에 깃든 죽음의 얼굴이라고. 한여름 정오의 분수 속에서도 죽음은 살며시 존재를 드러낸다고. 이 통찰이 단순한 철학적 명제로 들리지 않는 것은, 그것이 암세포가 자신의 몸을 지워가는 과정에서 실제로 감각된 진실이기 때문이다.
선생은 죽음을 두려워했다. 감추지 않았다. '철창을 나와 덤벼드는 호랑이와 맞닥뜨리는 것 같다'고 했다. 평생 글을 써온 그에게 암은 잔인하게도 그 재능부터 앗아갔다. '암세포는 내 몸의 지우개였어. 머릿속에 들어있는 모든 것의 지우개였어.' 이 고백 앞에서 독자는 감히 위로의 말을 꺼내지 못한다. 다만 그 처절함 속에서도 그가 여전히 앉아 말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인간 정신의 품위에 대한 어떤 증언처럼 느껴진다.
그가 죽음을 정의하는 방식은 독특하고 아름답다. 죽음이란 어린 시절 신나게 놀다가 '밥 먹으러 들어오라'는 엄마의 부름을 듣는 것과 같다고 했다. 엄마는 밥이고 품이고 생명이다. 그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이 죽음이라면, 죽음은 절망의 끝이 아니라 귀환이 된다. 이 비유 하나로 선생은 수십 권의 철학서가 말하려 했던 것을 단숨에 해낸다. 그것이 이어령이라는 지성의 힘이었다.
책은 죽음에만 머물지 않는다. 사랑과 용서, 종교와 과학, 돈과 꿈, 고난의 의미와 자기만의 삶을 사는 것에 관한 이야기들이 경계 없이 흘러간다. 그 모든 흐름의 밑바닥에는 하나의 메시지가 깔려 있다. 무리 속에 안주하지 말라. 방황하고 탐험하고, 기어이 '자기'를 살아내라. 고난을 두려워 말고 겪어내라. 그것만이 자신만의 스토리를 만든다. 이 당부들이 유언처럼 읽히는 것은, 그것이 실제로 선생의 마지막 말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여러 번 멈추었다. 마흔 후반의 나이에, 중간쯤 왔다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우리 세대에게 이 책이 건네는 것은 단순한 위로가 아니다. 그것은 각성이다. 우리는 지금 얼마나 진짜 자신의 삶을 살고 있는가. 죽음이 언젠가 찾아온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 앎이 오늘의 하루를 바꾸고 있는가. 선생은 죽음과 팔씨름하며 얻어낸 전리품을 이 책에 가득 채워두었다. 그것을 받아 읽는 일이, 살아있는 우리의 몫이다.
2022년 2월, 이어령 선생은 우리 곁을 떠났다. 하지만 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 '내 육체가 사라져도 내 말과 생각이 남아 있으니, 그만큼 더 오래 사는 셈'이라고.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나는 비로소 그 말의 무게를 실감했다. 선생은 지금도 이 책 속에서 말하고 있다. 화요일마다 우리를 불러 앉혀, 낮고 울림 있는 목소리로, 삶과 죽음에 관한 가장 솔직한 수업을 계속하고 있다.
이 불가해한 생을 좀 덜 외롭게 건너고 싶은 사람이라면, 지금 이 책을 펼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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