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 우리가 걸어가는 곳은 유토피아일까 디스토피아일까

미래를 그린 영화 가운데 유독 오래 기억에 남은 작품들을 떠올려 봅니다. 비 내리는 잿빛 도시를 헤매는 복제인간, 기계가 만든 가상의 세계 속에서 잠든 인류, 인공지능과 사랑에 빠졌다가 끝내 홀로 남겨지는 남자.
인간의 존엄을 묻는 작품도 있었고 마음을 데워주는 애니메이션도 있었지만, 돌아보면 대부분 우울하고 서늘했습니다. 인간은 오래전부터 미래를 상상할 때마다 희망보다 경고를 먼저 꺼내 들었던 셈입니다.
그 경고가 더는 스크린 속 이야기로만 느껴지지 않는 시절입니다. 모두가 AI를 말합니다. 회의실에서도, 아이들 숙제에서도, 저녁 식탁에서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물음이 자꾸 마음에 걸립니다. 우리는 이 거대한 변화 앞에서 무엇을 준비해 두었을까요. 솔직히 저는 아무것도 마련해 두지 못한 채, 그저 편리하게 이용하고만 있었습니다.
이 글에서 함께 생각해 볼 것
1. 유토피아는 왜 '어디에도 없는 곳'일까
2. 오웰이 아닌 헉슬리의 미래, 그리고 AI
3. 강요가 아닌 '위임'이 만드는 비극
4. 칸트가 240년 전에 남긴 경고, "감히 알려고 하라"
5.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를 가르는 것
1. 유토피아, '어디에도 없는 곳'이라는 이름
'유토피아'라는 말은 1516년 토머스 모어가 만든 단어입니다. 그리스어로 '어디에도 없는 곳'이라는 뜻이지요. 이상향이라는 이름을 붙이면서도 그곳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단어 안에 새겨 넣은 것입니다.
오백 년 전 사람의 이 짓궂은 작명이 지금은 꽤 정직하게 읽힙니다. 유토피아는 도착하는 장소가 아니라, 끝없이 향해 가야 하는 방향일지 모른다는 뜻으로요.
2. 오웰이 아닌 헉슬리의 미래, 그리고 AI
반대로 디스토피아는 어떤 얼굴로 찾아올까요. 미디어 학자 닐 포스트먼은 「죽도록 즐기기」에서 두 작가의 미래를 나란히 놓았습니다.
조지 오웰은 누군가 책을 금지하고 진실을 감추는 세상을 두려워했습니다. 올더스 헉슬리는 달랐습니다. 금지할 필요조차 없이 사람들이 스스로 책을 읽지 않게 되는 세상, 억압받으면서도 그 억압을 사랑하게 되는 세상을 더 두려워했지요. 포스트먼은 우리가 맞닥뜨릴 미래가 오웰보다 헉슬리 쪽에 가깝다고 보았습니다.
AI 시대의 그림자도 아마 헉슬리의 모습에 가까울 것입니다. 누구도 우리에게 생각을 멈추라고 명령하지 않습니다. 다만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편리함이 매일 조금씩 손을 내밀 뿐입니다.
글을 대신 써주고, 판단을 대신 내려주고, 무엇을 볼지까지 골라줍니다. 그 손을 잡는 건 언제나 우리 자신입니다.
3. 강요가 아닌 '위임'이 만드는 비극
괴벨스가 했다고 회자되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는 사람들에게 강요하지 않았다.
그들이 우리에게 위임했다.
이 문장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역사 속 많은 비극은 총칼보다 먼저, 판단을 내려놓은 평범한 사람들의 동의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에리히 프롬이 「자유로부터의 도피」에서 짚었던 것도 같은 지점이었습니다. 자유는 선물이기 전에 짐이고, 사람들은 그 짐이 무거워질 때 기꺼이 누군가에게 자신을 맡겨버린다는 것이지요.
4. 칸트가 240년 전에 남긴 경고, "감히 알려고 하라"
이 대목에서 칸트의 오래된 글 한 편이 떠오릅니다. 그는 1784년 「계몽이란 무엇인가」에서, 계몽이란 스스로 초래한 미성숙에서 벗어나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미성숙이 왜 그토록 달콤한지도 정확히 짚었습니다. 나 대신 이해해 주는 책이 있고, 나 대신 양심을 가져주는 목회자가 있고, 나 대신 식단을 정해주는 의사가 있다면, 굳이 스스로 생각하느라 애쓸 필요가 없다는 것이지요.
이백사십 년 전의 이 문장에 '책' 대신 'AI'를 넣어 읽어보면, 마치 오늘 아침 신문에 실린 칼럼처럼 읽힙니다. 칸트가 내건 구호는 단순했습니다.
감히 알려고 하라.
(Sapere aude)
5. AI를 멀리하자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오해는 없었으면 합니다. 저 역시 조직을 이끌며 이 도구의 힘을 매일 실감합니다. 몇 시간 걸리던 분석이 몇 분 만에 끝나고, 놓쳤던 관점을 짚어주기도 합니다.
문제는 도구가 아니라 위임의 범위입니다.
- 자료를 맡기는 것과 판단을 맡기는 것은 전혀 다른 일입니다.
- 초안을 맡기는 것과 생각을 맡기는 것도 그렇습니다.
그 경계를 의식하지 않는 순간, 편리함은 조용히 의존이 됩니다. 그리고 의존은 대개 소리 없이 습관이 됩니다.
6.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를 가르는 것
그렇다면 우리의 미래는 결국 어디로 가게 될까요. 저는 그 답이 기술의 성능표에 있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를 가르는 것은 AI가 얼마나 똑똑해지느냐가 아니라, 그 앞에서 우리가 무엇을 끝까지 손에 쥐고 있느냐일 것입니다. 질문하는 힘, 의심하는 힘, 그리고 "이건 내가 판단하겠다"고 말할 수 있는 작은 용기 같은 것들 말입니다.
어쩌면 미래는 어느 날 갑자기 도착하는 풍경이 아니라, 우리가 오늘 무엇을 위임하고 무엇을 지켜냈는지가 쌓여 만들어지는 결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영화 속 디스토피아가 무서운 이유는 그곳에 악당이 있어서가 아니라, 아무도 언제부터 그렇게 되었는지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이니까요.
그래서 오늘은 답 대신 질문 하나를 남겨두려 합니다.
오늘 하루, 여러분은 무엇을 AI에게 맡기셨나요.
그리고 그중 무엇은, 끝까지 여러분의 몫으로 남겨두고 싶으신가요.
여러분의 생각도 댓글로 들려주세요.
함께 읽으면 좋은 책
- 토머스 모어, 「유토피아」
- 닐 포스트먼, 「죽도록 즐기기」
- 올더스 헉슬리, 「멋진 신세계」
- 조지 오웰, 「1984」
- 에리히 프롬, 「자유로부터의 도피」
- 임마누엘 칸트, 「계몽이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