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서 해라"는 말의 무게

알아서 해라"는 말의 무게
사원 시절, 선배에게 가장 듣기 싫었던 말 중 하나는 "알아서 해라"였다.
무엇을 어디까지 해야 하는지, 어떤 기준으로 판단해야 하는지 알려주지 않은 채 책임만 넘기는 말처럼 들렸다. 속으로는 자주 되물었다. 알아서 하려면, 먼저 알아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리더가 된 지금은 그 말이 조금 다르게 들린다.
일에는 정답이 없는 순간이 많다. 모든 상황을 설명해 주고, 순서와 방법까지 정해 줄 수는 없다. 그렇게 해서 나온 결과는 안전할 수는 있어도, 온전히 그 사람의 일은 되기 어렵다. 누군가에게 일을 맡긴다는 것은 결국 판단할 기회까지 건네는 일이다. "알아서 해라"는 말에는 때로 "네가 판단해도 된다"는 허락과 "그 판단을 믿겠다"는 신뢰가 함께 들어 있었다.
물론 이제 와서 그 말을 무조건 좋게만 해석하는 것은 아니다. 아무런 배경도 기준도 주지 않은 채 알아서 하라는 것은 위임이 아니라 방치다. 실패했을 때 책임은 아래로 보내고 성과만 가져가는 리더도 있다. 그래서 같은 말이라도 누가, 어떤 마음으로, 어떤 준비를 해 놓고 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말이 된다.
좋은 리더의 "알아서 해라" 뒤에는 보이지 않는 안전망이 있다. 목적과 원칙은 분명히 알려 주고, 꼭 필요한 자원은 마련해 준다. 중간에 묻는 것을 약함으로 보지 않고, 잘못된 방향으로 너무 멀리 가기 전에는 조용히 붙잡아 준다. 그러면서도 마지막 판단은 맡은 사람의 몫으로 남겨 둔다.
돌이켜 보면 나를 키운 것은 친절한 설명만이 아니었다. 조금 막막했지만 스스로 생각해야 했던 시간, 결정한 뒤 그 결과를 감당해 본 경험도 나를 여기까지 데려왔다. 당시에는 무심하다고 생각했던 선배의 말 속에 기다림과 믿음이 있었음을 이제야 짐작한다.
그래서 나도 가끔 후배에게 "알아서 해라"라고 말한다. 다만 예전보다 그 말의 무게를 안다. 말하기 전에 기준을 충분히 나누었는지,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자리를 마련했는지, 정말 믿고 맡길 준비가 되어 있는지 먼저 묻게 된다.
"알아서 해라"는 일을 떠넘기는 가장 쉬운 말이 될 수도 있고, 사람을 키우는 가장 깊은 말이 될 수도 있다. 그 차이는 듣는 사람의 역량보다 말하는 사람의 책임에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