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테 《신곡》 인문학 - 무엇이 우리를 인간으로 살아가게 하는가

- 제목: 단테 《신곡》 인문학 - 무엇이 우리를 인간으로 살아가게 하는가
- 저자: 박상진
- 출간: 문예출판사
- 출판: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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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테 《신곡》 인문학 | 박상진
단테의 《신곡》을 삶의 태도를 묻는 인문학의 텍스트로 다시 읽는다. 16가지 키워드와 원문 번역을 통해, 혼란의 시대에 회복해야 할 인간성의 방향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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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불을 등 뒤로 돌리는 법
서점에서 책을 골라잡고 한숨을 쉰다. 신곡이라니. 대학 시절 교양 수업에서 완독은커녕 발췌본조차 겨우 넘겼던 책이 아닌가. 그 이후 몇번이나 시도해서 완독했었는데 또 그 어려운 공부를 택했다. 그런데 책은 시작부터 다른 질문을 던진다. 신곡을 얼마나 이해했느냐가 아니라, 지금 우리가 인간으로 살아가고 있느냐는 질문이다. 그 순간 이 책은 고전 해설서에서 오늘의 물음으로 자리를 옮겼다.
저자는 서문에서 지금이 "반지성의 이념이 가면을 쓰고 광기의 춤을 추는 시대"라고 말한다. 처음엔 다소 격한 표현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곰곰이 곱씹어보니, 요즘 우리가 매일 마주치는 풍경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확신에 찬 목소리들이 넘쳐나고, 옳고 그름보다 편이 먼저 정해지는 시대. 그 안에서 정의와 연민, 양심과 관용 같은 단어는 종종 낡고 순진한 말처럼 취급된다. 저자는 바로 이 지점에서 단테를 다시 불러온다. 700년 전의 순례자가 지금 우리에게 해줄 말이 있다는 것이다.
책은 지옥, 연옥, 천국을 가로지르는 단테의 여정을 용기, 연민, 사랑, 분노 같은 16개의 키워드로 다시 짠다. 흥미로운 건 이 책이 신곡의 줄거리를 순서대로 설명하는 데 별 관심이 없다는 점이다. 대신 각 키워드 앞에 우리를 세워두고 묻는다. 당신은 이 순간 용기를 냈는가, 누군가의 고통 앞에서 진짜로 연민을 느꼈는가. 지옥 편에 등장하는 수많은 죄인들을 읽으며 나는 자꾸 멈칫했다. 책무를 외면한 자, 거짓으로 이득을 취한 자, 탐욕을 멈추지 못한 자들의 모습이 낯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아주 먼 시대의 악인이 아니라, 방심하면 내가 될 수도 있는 사람들이었다.
책에서 가장 오래 마음에 남은 대목은 연옥 편의 한 구절이다. 저자는 마르크스가 자본론 서문에 신곡의 한 대목을 인용했다는 일화를 들려주는데,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으며 "너의 길을 따르라, 사람들은 말하게 두라"고 스스로에게 되뇌었다는 것이다. 이 장면이 유독 와닿았던 이유는, 결국 신곡이 말하는 인간다움이란 거창한 도덕적 완성이 아니라 흔들리면서도 걸음을 멈추지 않는 태도라는 걸 새삼 깨달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렇게 적는다.
판단이 언제나 옳을 수는 없지만, 그 결과로 비판받는 것보다 무서운 건 아무 선택도 하지 않은 채 멈춰 서 있는 것이라고. 최근 나 역시 결정을 미루고 안전한 침묵 속에 숨었던 순간들이 떠올라 마음이 찔렸다.
단테가 지옥과 연옥과 천국에서 목격한 것은 결국 인간이 가진 선과 악의 스펙트럼 전체였다. 그런데 그 여정의 끝에서 단테가 도달한 곳은 심판자의 자리가 아니라, 타인의 고통을 먼저 헤아리는 자리였다. 저자는 이를 두고 손에 든 등불을 등 뒤로 돌려 다른 이의 길을 밝히는 사람이 되라고 표현한다. 나는 이 이미지가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가장 정확한 은유라고 생각한다. 인간답다는 것은 결국 나의 어둠만 두려워하지 않는 게 아니라, 그 등불로 남의 어둠까지 비출 줄 아는 것이다.
이 책이 특별한 또 하나의 이유는, 단테 본인의 삶이 결코 안온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계속 상기시켜준다는 데 있다. 젊은 나이에 정치적 성공의 정점에 올랐던 단테는 결국 모든 것을 잃고 조국에서 추방당해 평생을 떠돌았다. 신곡은 방황하는 나그네가 방랑길 위에서 써 내려간 기록이다. 그러니 신곡이 건네는 위로는 관념적인 훈계가 아니라, 스스로 길을 잃어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이다. 요즘처럼 각자의 자리에서 이런저런 이유로 흔들리고 있는 우리에게 완전한 인간이어서 인간다운 게 아니라, 흔들리면서도 다시 걷기 때문에 인간다운 것이라는 사실은 묘한 안도감을 준다.
책장을 덮으며 나는 신곡을 한번에 완독못한 부채감에서 조금은 자유로워졌다. 이 책이 진짜로 남긴 것은 방대한 원전에 대한 지식이 아니라, 인간답게 산다는 것이 결국 정의를 향해, 타인의 고통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가는 일이라는 단순하고도 무거운 확인이었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다만 걸음을 멈추지만 않으면 된다. 700년 전 지옥의 어둠 속에서 단테가 배운 것도, 결국 그것이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