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답(No答)의 세계에서

노답(No答)의 세계에서
— 스스로 답이 되는 법에 관하여
"세상은 기본적으로 노답일 때가 많다. 그러니 스스로 답을 찾아가는 방법을 알아내야만 한다."
나는 반편생 살았으니 오래 살았다. 그리고 오래 살수록 한 가지 사실이 더욱 선명해졌다. 세상은 우리에게 답을 가르쳐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릴 때 우리는 선생이 있고, 교과서가 있고, 부모가 있고, 경전이 있으니 언젠가는 모든 질문에 답이 주어지리라고 믿었다.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깨닫게 된다. 인생의 진짜 질문들, 즉 어떻게 살 것인가,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누구를 사랑할 것인가, 무엇을 버릴 것인가 이런 물음들에 대해서만은 세상 어디에도 정답지가 없다는 것을 점점 알게 된다.
노답(No答)은 패배가 아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知之為知之 不知為不知 是知也。" 아는 것을 안다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 하는 것, 그것이 앎이라고. 이 짧은 문장 속에 얼마나 깊은 지혜가 담겨 있는가. 성인조차도 '모름'을 앎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에픽테토스는 노예로 태어났다. 쇠사슬에 묶인 채로 세상을 배웠다. 그에게 세상이 답을 건네준 적이 있었던가. 없었다. 그럼에도 그는 말했다. "당신을 방해하는 것은 사건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사건에 대한 당신의 판단이다." 답 없는 세계 속에서 그가 발견한 것은, 답을 찾는 방식 그 자체였다.
노답(No答)이란 무지의 증거가 아니다. 그것은 아직 질문이 살아있다는 증거다. 답이 없는 곳에 길이 없는 것이 아니라, 아직 아무도 걷지 않은 길이 있는 것이다.
"답이 없다고 멈추는 자는 길을 잃은 것이고, 답을 스스로 만들어가는 자는 길을 여는 것이다."
방법을 찾는다는 것의 의미
장자(莊子)는 요리사 포정(庖丁)의 이야기를 전한다. 그 요리사는 소를 잡을 때 뼈와 뼈 사이의 빈 틈을 찾아 칼을 놀렸다. 억지로 자르지 않았다. 자연의 결을 따라 움직였다. 그것이 기술이 아니라 도(道)라고 장자는 말한다.
답을 찾는다는 것도 이와 같다. 세상이 내게 닫혀있을 때, 억지로 벽을 부수려 하지 말라. 벽과 벽 사이에 반드시 틈이 있다. 그 틈을 감각하는 것, 그것이 방법을 아는 자의 기술이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황제였으나 그의 삶은 끝없는 노답의 연속이었다. 전쟁, 역병, 배신, 죽음 모든 것이 그를 시험했다. 그는 그 안에서 날마다 《명상록》을 썼다. 답을 기록한 것이 아니었다.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기록했다. 그 과정 자체가 그를 위대하게 만들었다.
방법을 안다는 것은 정답을 아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불확실성 앞에서도 다음 한 걸음을 내딛을 수 있는 용기와 감각을 지니는 것이다.
스스로라는 두 글자의 무게
스스로(自). 이 두 글자 속에 철학이 있다. 스스로란, 외부의 허락 없이 자기로부터 움직인다는 뜻이다. 누군가가 답을 가져다줄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 답의 씨앗을 싹틔우는 것이다.
다산 정약용 선생은 유배지 강진에서 18년을 보냈다. 세상은 그에게 노답이었다. 조정은 그를 버렸고, 벗들은 떠났고, 길은 막혔다. 그러나 그는 그 섬 같은 고독 속에서 500권이 넘는 책을 썼다. 그 책들은 세상을 향한 항변이 아니었다. 세상이 노답일 때, 스스로 답이 되는 방법을 보여준 기록이었다.
니체는 말했다. "너 자신이 되어라." 그것은 낭만적인 구호가 아니다. 세상이 어떤 답도 주지 않을 때, 나 스스로가 답의 근거가 되어야 한다는 냉혹한 철학적 선언이다.
"세상이 노답일수록, 자기 자신이 유일한 교과서가 된다. 그 교과서를 끝까지 읽은 자만이, 스스로의 스승이 된다."
답을 찾아가는 자의 자세
첫째, 질문을 두려워하지 말라. 답이 없다는 것은 질문이 아직 살아있다는 신호다. 죽은 질문만이 영원히 침묵한다.
둘째, 과정을 신뢰하라.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고, 인생의 지혜도 하루아침에 완성되지 않는다. 매일 조금씩 나아가는 그 발자국들이 쌓여, 어느 날 돌아보면 길이 되어있다.
셋째, 혼자 걷되 혼자이지 말라. 스스로 답을 찾는다는 것이 고독한 폐쇄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공자도 제자들과 함께 걸었고, 소크라테스도 광장에서 대화했다. 내 답을 찾는 여정에서 타인의 지혜는 나침반이 된다. 단, 그 나침반을 들고 걷는 것은 오직 나여야 한다.
넷째, 틀리는 것을 겸허히 받아들이라. 오늘의 나의 답이 내일의 오답이 될 수 있다. 그것은 실패가 아니다. 성장의 증거다. 진정 답을 찾는 자는 틀릴 때마다 더 깊이 질문하는 법을 배운다.
노답의 세계는, 사실 선물이다
만약 세상이 모든 질문에 답을 가지고 있다면 어떨까. 그렇다면 우리는 그저 정답지를 외우는 존재에 불과할 것이다. 역사가 없고, 철학이 없고, 예술이 없을 것이다. 노답이기 때문에 인간은 생각한다. 노답이기 때문에 인간은 창조한다. 노답이기 때문에 인간은 성장한다.
세상이 노답인 것은, 세상이 우리에게 자유를 주었다는 뜻이다. 답을 강요하지 않는다는 것은, 우리 스스로 답을 만들어도 된다는 허락이다.
그러니 오늘, 당신의 앞에 답 없는 문제가 놓여 있거든 — 절망하지 말라. 그 노답은 당신에게 주어진 빈 캔버스다. 그 위에 무엇을 그릴지는 오직 당신만이 알 수 있다. 그것을 알아내는 것, 그것이 삶이다.
"당신이 답을 찾는 것이 아니다. 답을 찾아가는 당신이 이미, 답이다."
나는 오래 살았다. 그리고 오래 살수록 한 가지 사실이 더욱 선명해졌다. 세상이 노답인 덕분에, 나는 매일 조금씩 더 나다운 사람이 되어갔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