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 속에 피어나는 위안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현관을 나선다. 오늘도 5분 달리고, 다시 5분을 쓴다. 그 짧은 시간이 나를 살게 한다. 그러나 어떤 날은 발걸음이 천근만근 무겁고, 펜을 쥔 손끝이 가만히 떨릴 때가 있다.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은 무거움이 좀처럼 가시지 않는 그런 날이다.
살다 보면 누구에게나 그런 시간이 찾아온다. 까닭 모를 슬픔이 가슴을 짓누르고, 어제까지 멀쩡하던 일들이 오늘따라 견디기 어려운 짐이 되는 순간 말이다. 명상록에 이런 말이 나온다. “외부의 일이 너를 괴롭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 대한 너의 판단이 너를 괴롭히는 것이다.” 처음 이 문장을 마주했을 때, 나는 그저 차가운 위로라 여겼다. 그러나 마흔 중반을 지나며 비로소 깨닫는다. 고통은 그 바깥에서 날아오는 화살이 아니라, 화살을 받아 안는 내 마음의 자세에서 비로소 깊어진다는 것이다.
다산 정약용 선생이 강진에서 보낸 십팔 년의 유배를 종종 떠올린다. 가족과 떨어져, 벼슬에서 내쳐져, 모든 것을 잃은 사람이 그곳에서 오백 권이 넘는 책을 썼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했을까. 다산은 고통을 외면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한복판에서 자신을 더 깊이 들여다보았다. 가장 깊은 바다 한가운데 도리어 가장 고요한 심해가 자리 잡고 있듯, 그의 글에는 짙은 슬픔과 흔들리지 않는 고요가 함께 흐른다.
지난 이십여 년의 직장 생활을 돌이켜 보면, 가장 큰 성장은 늘 가장 어두운 시간 뒤에 찾아왔다. 사업이 흔들리던 밤, 사람을 잃었던 새벽, 결과가 보이지 않던 회의실의 침묵. 그때마다 나는 무너졌고, 그때마다 다시 일어섰다. 무너짐과 일어섬을 반복하는 사이 어느새 나는 조금씩 단단해졌다. 상처는 아물면서 굳은살이 되고, 굳은살은 다음 발걸음을 가능하게 한다.
세네카는 “고통은 덕(德)의 기회”라 했다. 아프지만 옳은 말이다. 다만 고통이 스승이 되려면, 우리는 그것을 회피하지 않고 정직하게 마주해야 한다. 아픈 곳을 외면한 채로는 어떤 치유도 시작되지 않는다. 슬픔을 슬픔이라 부르고, 두려움을 두려움이라 인정하는 그 자리에서 비로소 회복은 시작된다.
그리고 우리는 결코 혼자가 아니다.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우리를 응원하는 손길은 늘 있다. 가족의 따뜻한 한마디, 오랜 벗의 침묵 어린 공감, 때로는 낯선 이의 작은 친절이 우리를 다시 살게 한다. 사람 인(人) 자가 두 사람이 서로 기대어 선 모양임을, 우리는 너무 자주 잊는다. 사람은 사람으로 인해 무너지지만, 또한 사람으로 인해 일어선다.
겨울이 지나야 봄이 오고, 밤이 깊어야 새벽이 가깝다. 이 단순한 진리가 어떤 날은 진부한 위로처럼 들리지만, 또 어떤 날은 그 한마디가 내 하루를 버티게 한다. 모든 것은 지나간다. 지금의 고통도, 지금의 무거움도, 그 또한 흘러갈 것이다.
오늘도 나는 5분을 달리고, 5분을 쓴다. 위대한 결심도 거창한 다짐도 아니다. 그저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를 잇는 작은 다리 하나를 매일 놓을 뿐이다. 그 다리 위에서 비로소 위안은 멀리 있지 않음을 안다. 깊은 호흡 한 번, 창으로 들어오는 햇살 한 줄기, 그리고 다시 시작하는 마음 한 자락. 그 작은 것들 속에 위안이 있다.
부디 당신의 마음에도 그 작은 위안의 씨앗이 깃들기를. 그리고 그 씨앗이 천천히, 그러나 분명히 자라나기를. 고통 속에서도 우리는 피어날 수 있다. 아니, 고통이 있기에 비로소 피어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