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떤 인재를 기다리는가

잇는 사람의 시대
우리는 어떤 인재를 기다리는가
얼마 전 한 후배가 보낸 메시지를 오래 들여다보았다. “선배, 저 혼자 만든 앱으로 한 달에 천만 원을 벌어요.” 이제 막 서른을 넘긴 그는 유수의 회사들을 거쳐 얼마전부터 회사에 다니지 않았고, 팀도 없었고, 사무실도 없었다. 노트북 한 대와 AI 도구 몇 개가 그의 회사였다. 솔로프리뉴어(Solopreneur).
카르타(Carta)의 자료에 따르면 미국 스타트업 가운데 1인 창업의 비중은 2015년 17%에서 2024년 35%로 두 배 이상 늘었다. 힉스필드AI 같은 회사는 단 9개월 만에 연간 반복 매출 2억 달러를 넘겼다. “한 사람이 1조 원짜리 회사를 만드는 시대가 머지않다”던 샘 올트먼의 말이 더 이상 허풍처럼 들리지 않는 시대다.
그러나 더 중요한 이야기는 그다음에 있었다. 후배는 덧붙였다. “그런데 선배, 저 같은 사람이 너무 많아져요.” 그제야 뭐가 문제이고 핵심인지 깨달았다. 이제 만드는 일은 더 이상 어려운 일이 아니다. 진짜 어려운 일은, 만들어진 것을 살아 있게 만드는 일이다.
제품을 만드는 능력은 빠르게 평준화되고 있다. 바이브 코딩 한 줄이면 앱이 나오고, 프롬프트 한 문장이면 디자인이 나온다. 가트너는 2026년까지 기업 애플리케이션의 40%가 작업 특화 AI 에이전트를 탑재할 것이라 전망했고, 맥킨지 조사에서는 전 세계 직장인의 88%가 이미 한 가지 이상의 업무에서 AI를 정기적으로 쓴다고 답했다. 도구는 이미 모두에게 갔다. 그렇다면 격차는 어디에서 벌어지는가.
격차는 ‘잇는 능력’에서 벌어진다. 딜로이트의 2026년 전망 보고서가 던진 한마디가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더 뛰어난 모델이 아니라, AI를 규모 있게 운영할 수 있는 능력이 승패를 가른다.” 모델은 누구나 빌릴 수 있다. 제품도 누구나 만든다. 그러나 흩어져 있는 도구와 사람과 데이터를 꿰어, 한 줄의 매출로 흘러가게 하는 사람은 흔하지 않다. 시장은 이제 ‘사다, 팔다’로 작동하지 않는다. ‘잇다’로 작동한다. 잇는 사람이 매출을 만들고, 잇는 사람이 기회를 만든다.
생각해 보면 동서고금의 지혜는 이미 이 진리를 말해 왔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명상록』에서 “우주 만물은 서로 얽혀 있고, 그 연결은 신성하다”고 했다. 다산(茶山) 정약용 선생도 강진 유배지에서 흩어진 책과 흩어진 제자와 흩어진 시간을 한 줄로 꿰어 오백 권의 저작을 남겼다. 그가 천재여서가 아니다. 그가 잇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좋은 리더, 좋은 사업가, 좋은 어른은 늘 ‘잇는 사람’이었다. 점을 만드는 사람보다 점을 잇는 사람이 세상을 움직여왔다.
그런데 왜 지금, 이 능력이 유난히 더 중요해졌는가. 만들어진 것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매일 수천 개의 SaaS가 출시되고, 매시간 수만 개의 콘텐츠가 쌓인다. 도구는 차고 넘치는데, 그 도구들을 꿰어 한 사람의 문제를 풀어주는 일은 여전히 비어 있다.
포브스코리아가 정리한 2026 AI 트렌드의 핵심도 다르지 않았다. “AI가 만든 결과물을 실제 업무 실행 구조에 자연스럽게 녹여내는 것이 새로운 과제”라는 것. 콘 페리(Korn Ferry)가 미래 인재의 핵심 자질로 ‘학습 민첩성(Learning Agility)’을 꼽고, 세계경제포럼이 ‘분석적·창의적 사고’를 가장 중요한 역량으로 지목한 것도 결국 같은 이야기다. 빠르게 배우고, 빠르게 잇는 사람.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첫째, 만드는 일에 너무 오래 머물지 말 것. 한때 ‘제품을 만들 줄 아는 것’이 곧 능력이던 시대가 있었다. 그 시대는 천천히 저물고 있다. 만드는 일에서 인정받는 시간은 짧고, 잇는 일에서 인정받는 시간은 길다. 자기가 만든 것에만 갇혀 있는 사람은, 끝내 자기가 만든 것의 한계에 갇힌다.
둘째, ‘사이’를 보는 눈을 기를 것. 좋은 연결자는 제품을 보지 않는다. 제품과 제품 사이, 사람과 사람 사이, 욕구와 해법 사이의 빈 공간을 본다. 그 빈 공간이 곧 매출의 자리다. 에픽테토스가 “우리를 흔드는 것은 사건이 아니라 사건을 보는 관점”이라 했듯이, 우리를 부유하게 만드는 것도 제품 자체가 아니라 제품을 보는 관점이다.
셋째, 사람을 다시 공부할 것. AI 시대의 역설은 여기에 있다. 기계가 똑똑해질수록, 사람을 이해하는 사람의 가치가 올라간다. 제품을 사는 것도 사람이고, 일을 부탁하는 것도 사람이고, 끝내 매출이 되어 돌아오는 것도 사람의 결정이다. 인공지능이 잘하지 못하는 단 한 가지가 있다면 그것은 ‘의지’다. 무엇을 선택할지, 어디로 갈지, 누구의 손을 잡을지 결정하는 일. 그 의지를 가진 사람이 잇는 사람이 된다.
어제 저녁, 그 후배에게 답장을 보냈다. “혼자 잘 만들었다고 자랑하지 말고, 누구와 무엇을 이었는지를 말해라. 그게 다음 십 년 너의 이력서가 될 것이다.” 보내고 나서 나는 한참을 가만히 있었다. 사실 그 말은 후배에게 한 말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한 말이었다.
만드는 일은 누구나 한다. 잇는 일은 아무나 못 한다. AI가 ‘만드는 시대’를 열었다면, 사람은 ‘잇는 시대’를 열어야 한다. 우리가 기다리는 인재상은 거기에 있다. 화려한 스펙도, 천재적 기술도 아닌, 흩어진 점들을 묵묵히 꿰어 ‘매출’이라는 한 줄의 문장을 완성하는 사람. 그 한 사람이 결국 시대를 가져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