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언 & 생각

오늘이 처음인 것처럼

SSODANIST 2026. 3. 10.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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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빠르다고 느끼기 시작한 것이 언제부터였을까.

 

어릴 때는 여름방학이 영원처럼 길었다. 하루가 하나의 세계였고, 오후 세 시의 햇살과 저녁 무렵 귀뚜라미 소리 사이에 수많은 사건들이 촘촘히 끼어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한 달이 일주일처럼, 일 년이 한 달처럼 지나간다. 달력을 넘기다 보면 "벌써?"라는 말이 입에서 먼저 나온다.  26년도 벌써 3월이 지나고 있다. 우리는 이것을 나이 탓이라고,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치부한다. 하지만 정말 그런 것일까.

 

심리학자들은 시간이 빠르게 느껴지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우리 뇌는 새로운 경험을 저장할 때 더 많은 기억의 공간을 쓴다. 처음 가보는 길, 처음 먹어보는 음식, 처음 만나는 사람 등 이런 '처음'들이 쌓일수록 시간은 풍성하게 기억된다. 반대로 매일 같은 출근길, 같은 점심 메뉴, 같은 대화 패턴이 반복될 때 뇌는 굳이 새 페이지를 펴지 않는다. 어제와 같으니 어제에 덧씌우면 그만이다. 그렇게 우리는 하루를 살았지만 뇌는 하루를 기억하지 못한다. 기억되지 않은 날들이 쌓이면 시간은 점점 얇아진다. 그것이 "빠르다"는 감각의 정체다.

 

생각해보면 두렵다. 내가 빠르게 보낸 것이 아니라, 그냥 통째로 잃어버린 것일 수 있으니까.

나는 한동안 효율을 삶의 기준으로 삼았다. 덜 낭비하고, 더 채우고, 미래를 위해 오늘을 아껴두는 것이 성실한 삶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아껴두려 했던 오늘이 정작 지나고 나면 어디에도 없었다. 서랍 속에 고이 모셔두었다고 생각했는데 서랍을 열면 텅 비어 있는 것처럼. 미래를 위해 유예해둔 삶은 미래가 와도 현재가 되지 않는다. 미래는 늘 미래로만 존재하다가, 과거가 되어버린다.

 

그렇다면 매일을 새롭게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거창한 변화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새 직장을 얻거나, 새 도시로 이사하거나, 삶을 뒤엎으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가장 작은 것에서 시작된다. 오늘 아침 창문으로 들어오는 빛의 각도를 어제와 다르게 바라보는 것. 늘 지나치던 골목을 오늘은 멈춰 서서 들여다보는 것. 늘 하던 말 대신 조금 다른 말을 고르는 것. 그 작은 낯섦이 뇌에게 신호를 보낸다. "오늘은 어제가 아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이런 말을 남겼다. "일어나기 싫을 때 스스로에게 말하라. 나는 인간으로서 할 일을 하러 간다고." 황제였던 그도 매일 아침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는 것이 쉽지 않았던 모양이다. 하지만 그가 주목한 것은 의지가 아니었다. 오늘 이 하루가 그 자체로 목적이라는 인식이었다. 내일을 위한 준비가 아니라, 오늘이 곧 삶이라는 자각.

 

우리는 종종 현재를 과거와 미래의 통로쯤으로 여긴다. 어제를 반추하거나 내일을 걱정하는 사이, 오늘은 그냥 지나가는 복도가 된다. 하지만 삶은 복도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삶은 지금 이 방 안에서, 이 순간의 온도와 냄새와 감각 속에서 일어난다.

 

매일 새로운 삶을 산다는 것은 결국 오늘에게 제대로 된 이름을 붙여주는 일이다. "그냥 평범한 하루"가 아니라,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2026년 3월의 이 하루"라고. 그렇게 이름을 붙이는 순간 하루는 무게를 갖는다. 무게를 가진 하루는 기억된다. 기억된 하루들이 쌓이면 시간은 다시 느려진다. 두껍고 단단하게.

 

시간이 빠른 것이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매일을 처음처럼 살지 않는 것이 문제다. 오늘 당신의 하루는 처음입니까, 아니면 어제의 복사본입니까.

그 질문 하나가 이미, 오늘을 새롭게 만드는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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